루프를 기반으로 한 음악들
처음 차승민을 만난 것은 2010년, 대금 연주자인 그가 국가 문화 교류 사업의 일환으로 뉴욕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나는 예전 자리에 있던 ’룰렛’에서 열린 그의 공연에 참석했는데, 굉장히 매혹적인, 섬세하면서도 깊은 소리가 만들어내는 시적인 음악에 푹 빠져들었다. 공연이 끝난 뒤 악보를 볼 수 있는지 물어보자, 그는 보면대에 놓여있던 악보를 건네주며 “원하시면 가지셔도 돼요.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영화 아마데우스 중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건네받은 악보를 보니 작은 섹션들을 잘라 접착 해놓은 것이 매우 독특했다. 그는 뉴욕에 머무는 동안 가능한 많은 콘서트에 참여했고, 음악가들을 만나 즉흥 연주를 나누었는데, 운이 좋게도 나 또한 그 음악가들 중 한 명으로서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떠나는 날이 다가오자 그는 내게 어떤 루프 머신을 사는 것이 좋은지 조언을 구했고, 가방 한가득 장비를 채워 집으로 돌아갔다.
알빈 루시에의 곡 ‘I am sitting in a room (1969)’은 루프를 기반으로 하는 음악의 대표적인 예다. 미국의 이 실험적인 작곡가는 짧은 글을 낭송하고 녹음한 뒤 이를 방 안에 틀고, 그 소리를 다시 녹음하여 재생한다. 이 과정은 더 이상 문구를 알아듣기 힘들어질 때까지 반복되어 마침내 우리 귀에는 그 방 고유의 음향적인 특성이 담긴 잔향들만 남게 된다. 그는 이후 ‘Exploration of the House (2005)’를 통해 같은 방식의 작업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콘서트홀에서 선보였는데, 이때는 베토벤의 작품 ‘헌당식’의 서곡 부분을 일부 발췌하여 소스로써 사용하였다. 또 다른 예로 윌리엄 바신스키의 작품 ‘Disintegration Loop Series (2002-2003)’가 있다. 헤드를 지날 때마다 마모되는 테이프 루프는 재생이 될수록 서서히 그 소리를 잃어가고, 이렇게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테이프에 붙어있던 페라이트가 떨어져 나가며 음악 안에 틈과 크랙이 늘어나게 되는데, 결국 소리는 정적이 되어 사라지고 ‘음악의 죽음’만이 남게 된다.
이제는 루프 페달과 소프트웨어가 테이프 머신과 샘플러가 있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혼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도 더욱 합리적이고 간편한 방법으로 다양한 트랙과 레이어를 실시간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대중들도 방송을 통해 코메디언이자 음악가인 레지 왓츠가 루프 머신을 사용하여 노래와 랩에 비트박스와 허밍을 더하는 것을 보았다.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 보라 윤은 천상의 소리와 같은 사운드스케이프를, 차승민은 그의 솔로 곡 속의 미니멀한 배경음들을 루프 머신을 이용해 만들어내고 있다.
만약 당신이 루프로 이루어진 이상한 세계로 여행 중이라면 이러한 특별한 창작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즐거운 음악적 여정이 되기를!
- John Chang
John Chang은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로 한국에서 태어나 몬트리올에서 유년 생활을 보냈고, 현재는 뉴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렉트릭 기타 콰르텟인 Bodies Electric 의 창립자이다.
추천곡:
Steve Reich - It’s Gonna Rain (1965)
Alvin Lucier - I Am Sitting In A Room (1969)
Gavin Bryars - Jesus’ Blood Never Failed Me Yet (1975)
Ghédalia Tazartès - Un Amour Si Grand Qu’il Nie Son Objet (1977)
William Basinski - The Disintegration Loops (2002-2003)
William Anderson is a guitarist and composer and an advisor to the Roger Shapiro Fund.